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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가 일어난지 어느덧 50년이 되었군요..
글쓴이: Supreme  나이: 만28세  성별:  지역: 해운대구
추천: 11  조회수: 2509  날짜: 2011.05.16 00:42

5·16 군사정변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소장 박정희를 비롯한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출신 일부 장교들이 사회의 혼란을 명분으로 제6군단 포병대, 해병대, 제1공수특전단 등을 동원해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이다.

원인은 이렇습니다.

제2공화국의 정치력 부재와 사회적 문제, 그리고 군 내부 인사들의 불만이 촉발된 성격이 강하다. 정치권은 집권당인 민주당이 신·구파간의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다양한 사회세력들은 각각의 정치적 요구를 주장하여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특히 혁신계 정치세력의 부상과 학생세력의 진출은 민족자주화운동, 통일촉진운동으로 전개되어 사회 분위기가 혼란해졌고, 군이 정권을 장악하기 쉬운 상태가 형성되었다.

한편 1958년부터 미국의 요청으로 추진된 감군(減軍)으로 인한 군내의 불만으로 촉발되어 한국 전쟁 이후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지위 신장과 더불어 권력에 대한 욕구가 충만되어 있던 군부 내 군벌세력 중 육사 8기생을 중심으로 고급 장성의 부정 부패와 승진의 적체현상을 공격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소장 박정희, 중령 김종필 등 육사 8기생들은 1960년 9월 군사정변을 계획하였다.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결심했던 데에는 그가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을 역임하던 시절 4·19 혁명이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박정희는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을 역임하면서 군사정변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이미 이승만을 축출하려는 쿠테타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그 때의 일로 군에서 배제되었고 전황이 급한 틈에 예비역의 신분으로 군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1960년 5월 8일을 거사일로 정했지만, 4·19 혁명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960년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 역임 후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하면서 김종필 중령을 비롯한 지지 세력을 규합하였다.

전개는 이렇습니다.

오는, 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인 소장 박정희와 육사 8기생 주도세력은 장교 250여 명 및 사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하였다.문재준 대령 제6군단 포병단 지휘관과 박치옥 대령 등은 곧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해 전권을 장악하고 정변의 성공과 6개항의 ‘혁명공약’을 발표하였다. 군사정변은 초기에 미8군 사령관 C. B. 매그루더, 야전사령관 이한림 등의 반대로 잠시 난관에 부딪히지만 미국 정부의 신속한 지지 의사 표명, 장면 내각의 책임 자각형 총사퇴, 대통령 윤보선의 체념 등에 의하여 이뤄졌다.

이즈음 장도영은 비밀통로를 이용해 제8군 미군사령부를 오다가며 매그루더 장군과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5월17일 매그루더는 박정희 소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나 박정희 소장은 절대적으로 군을 물릴 수 없다는 지지를 보였다. 당시 중령이던 김형욱이 장경순 준장을 폭력하는 일이 있었다. 그 이유는 중령 등 고급 장교들 중 5명의 위원만 뽑으라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5월18일 박정희는 유원식(兪原植)을 데리고 청와대로 찾아갔다. 그러나 윤보선은 반란군을 진압하지 않고 올 것이 왔다고 하여 군사정변을 체념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박정희 축출’다짐했던 미국, 베트남 파병 대가로 정권 보장) 유엔군 사령관 매그루더는 군부를 인정하지 않고 진압명령서를 들고 대통령 윤보선을 찾아가 '사인만 하시면 쿠데타군을 진압하겠다'고 하였으나 윤보선은 제 2의 미군정에 해당하는 내정간섭을 막기위해 체념적으로 군사정변을 받아들였다. 정변이 발생하자 당시 국무총리였던 장면은 카르멜 수도원에 피신하여 숨어 있다가 5월 18일에 나와 하야를 선언하였다. 5월 16일에 군사혁명위원회가 설치되면서 박정희가 부의장으로 취임하고 육군참모총장이던 장도영을 의장으로 추대하였다. 5월 20일에는 군사혁명위원회가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되고 장도영을 헌법에는 없는 “내각수반”으로 임명한다. 

그결과로 ...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장면 내각은 붕괴되었고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한 약 3년간의 군정통치가 이루어졌다. 군정기간 중 정변세력은 특수범죄(반혁명(정변), 반국가행위)처벌법, 정치활동정화법 등의 법적 조치를 통하여 정치적 반대세력과 군부 내의 반대파까지 제거하였다. 또한 핵심권력기구로서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민주공화당을 창당해 대통령제 복귀 등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을 하였다.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의장 박정희는 조만간 원대복귀 하겠다던 애초의 혁명공약 제6조를 추후 번복하고 1963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을 물리치고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후, 박정희는 6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윤보선을 물리치고 승리했다.

참 대단하군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이후 박정희대통령이 정권을잡으면서

1963.12.17일 ~ 1979.10.26

사태가 일어나기까지 무려 16년이란 세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우리나라의 대통령으로써

새마을운동과

한강의기적을 만들게 해준 위대한 업적을남긴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왜 하필 쿠데타를 일으켜 이렇게 대통령이 되고싶었던걸까요...?

차라리 육사 8기를 졸업하고나서 민주화적으로

국회의원이되어서 출마해서 대선에 출마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서 하는것이 옳지 않았을까 싶네요 ..

물론 전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좀 정권을 오랫동안 잡아서 그렇기도 하겠죠...

이만 여기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출처 : 다음(DaUm) 백과사전 몇몇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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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5.16,군사정변,다음,육사,이승만,박정희,한강,쿠데타,대통령
 
댓글: 1
2011.05.16 12:06
벌써 50년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시간 참 빠릅니다. 기억의 잊혀짐도 빠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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