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나니 문득 신하균 주연 '지구를 지켜라'가 생각이 났다. 잘 만들어졌고 적절히 재밋었는데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영화. 그래도 날이 갈 수록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있어서 '인류멸망보고서'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사회에 참석하기 전 네이버에서 영화를 검색해보니 이게 왠일? 별 평점이 고작 3점대?
보러 갈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역시 영화는 직접 봐야 제맛이지~ 하며 시사회장으로 향했다.
결론은 절대로 이 영화는 3점대가 아니다. 물론 부족한 것도 있고 억지스러운 설정도 있지만 그래도 3점은 아니다. 그보단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멋진 신세계
옴니버스 3부작 중 가장 첫 번째 작품.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아 괴 바이러스가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내용이다. 영화 시작 전 30분 가량 이루어진 감독과의 대화에서 임필성 감독은 '과연 사람들이 제대로 분리수거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가 돌고 돌아 결국 인간의 식탁에 오르게 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이 영화는 초반보다는 중후반이 더 재밌었다. 초반엔 살짝 억지스러운 유머와 주인공이 서서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상황에서 '난 인간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장면이 좀 어색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가는 과정을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서히 보여주는 순간, 억지와 어색함이 덜했다고 느꼈다. 살육을 통해 공포를 느끼게 하는 서양 좀비물과는 달리 어딘가 잘못된 짐승같이 변해버린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류 멸망이라는 주제에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천상의 피조물
예고편을 봤을 때 가장 기대했던 편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집중하기가 힘든 작품이었다.
인간도 오르기 힘든 경지를 한낱 로봇이 도달한다? 굉장이 흥미로운 소재다.
영화 내에서 로봇은 정교하게 움직인다. 또 절의 분위기나 주인공이 사는 집 등 로봇의 세계에
맞춰 공상적으로 그려낸 점이 인상깊었다. 시각적으로 어색하거나 부족한 점은 없었다.
그러나 로봇을 제작한 UR회사 회장이 RU로봇은 제거하려는 장면이 지나치게 길어지면서 지루해져 갔다. 배경을 불교 세계로 한정시킨 것도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었지만, 왜 로봇을 제거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도 없을 뿐더러, 로봇에게 열등감을 느낀 인간의 심리 또한 잘 드러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해피버스데이
아빠가 아끼는 당구공을 망가뜨리고, 몰래 인터넷으로 주문한 당구공이 거대 행성이 되어 지구에 도착한다는 기발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론 인물 캐스팅이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몇 시간 뒤 지구가 멸망하는 상황에서도 가족 개개인이 서로 다른 성격을 드러낸다. 지구에 있던 당구공이 어떻게 우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지구를 멸망시킬 행성이 아이가 주문한 당구공이라는 사실을 개연성있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통조림에 주목해달라고 했는데, 실제로 한 가족이 한 끼당 통조림 1개를 먹는다고 했을 때 필요한 통조림 양을 계산했다고 한다.
이 편에서는 행성이 지구로 떨어지고 나서 바로 10년 뒤 모습으로 넘어간다. 이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는 과정을 조금이라도 보여줬으면 더 재밌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영화는 감독의 말처럼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헐리웃 영화와 비교하지 않는' 자세로 보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실험영화라는 점에서 조금 더 관대하게 바라본다면, 앞으로 한국 영화 장르가 더 퓽요로워지지는 않을까 기대해 본다.